배움에는 구별이 없다 – 공자와 그의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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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지원센터 한종수작가
기사입력 2016-05-08 [19:24]

 

▲     © 행복세종타임즈


 

교육방법

 

공자의 수업은 오늘날 학교 수업과는 크게 달랐다. 요즘 학교는 한 반에 수십 명의 학생이 함께 수업을 듣지만, 공자는 몇 명의 제자들과 때로는 방 안에서, 때로는 야외 특히 은행나무 아래에서 다 같이 편하게 토론하며 수업을 진행하였다. 공자는 학습과정에서 ‘흥미’에 주목하였으며 학습, 사고, 행위의 결합을 주장하여 학습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와 독립적 사고능력을 기르는 데 주력하였는데, 《논어》<옹야> 편에서 공자가 한 말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知之者는 不如好之者요. 好之者는 不如樂之者”라고 했는데, 이 말은 노력하는 자는 좋아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며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개별교육 : 공자는 학습자의 성장 배경과 개성, 재능이 모두 다르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교육하기 전에 그런 것들을 파악하여 이를 바탕으로 개별적 교육을 실시(因材施敎라고 한다)하였다. 그래서 공자는 학습자의 타고난 능력에 대하여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최상이고, 배워서 아는 자는 그 다음이며, 애써 배우는 자는 또 그 다음이고, 애써 배우지 않는 자는 최하가 된다”라고 말하였다. 즉 ‘유교무류’를 주장했지만 이는 제자들의 신분과 경제력을 묻지 않겠다는 의미이지 타고난 능력을 묻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는 무능한 자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그의 교육을 받은 제자들은 어느 곳에 가도 제 몫을 할 수 있는 인재들이었다.  

    

불치하문 不恥下問 : 《논어》<공야장(公冶長)>편에 나오는 성어로 공자가 교육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춘추시대 위나라에 공어(孔圄)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의 시호는 문(文)으로, 사람들은 그를 공문자(孔文子)라고 불렀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어느 날 공자에게 물었다. "공문자는 왜 시호를 문이라고 한 것입니까(孔文子 何以謂之文也)?"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머리가 명민하면서도 배우는 것을 좋아하여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문(文)이라고 한 것이다(민이호학(敏而好學),불치하문(不恥下問),시이위지문야(是以謂之文也))."

    

이는 학문을 하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을 강조한 것으로,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물어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학문을 하는 사람은 모르는 것이 생기면 누구에게라도 묻고 배우는 자세로 배워야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수업료 : 공자는 “말린 고기 한 묶음 이상을 가지고 와서 내게 예물로 바치는 자가 있으면, 일찍이 가르쳐 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子曰 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 (《논어》<述而> )하고 말하였다. 당시 스승이나 윗사람을 찾아가서 가르침을 청하는 사람은 반드시 예물을 준비해야 했다. 누구에게 찾아가느냐에 따라 예물도 달랐다. 군주에게는 옥(玉)을, 경(卿:장관급 이상)에게는 새끼 양을, 대부(大夫)에게는 기러기를, 사(士)에게는 꿩을, 기술자나 상인에게는 닭을 가져가야 했다. 이 관례대로라면 사(士) 계급인 공자는 꿩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공자는 꿩 대신 속수(束脩)를 받았다. 수(脩)란 말린 육포라는 뜻이며 속(束)은 그 포를 10개 단위로 묶은 다발을 의미한다.

    

공자의 사학은 학비가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이렇게 마른 고기 다발을 받았을 정도로 거의 최저 수준이었다. 수업료라기보다는 최소한의 예를 표시하는 상징에 가까웠던 것이다. 물론 가정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배려했기 때문이었는데, 귀족의 자제들이나 자공처럼 경제적 능력이 있는 제자들에게는 별도로 기부금을 받았다.

    

공자의 제자 : 공자의 유가는 제자백가 중 가장 세력이 컸을 뿐 아니라 왕가의 교사, 고위관리, 정치고문, 장군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한나라 대에 이르러 유학이 정통 학문으로 인정받고 국가적인 장려를 받게 된 것도 우연이 이 아니었던 것이다.

    

공자의 제자 또는 문인은 이름이 알려져 있는 사람만도 70명을 넘는데, 사마천의《사기》〈중니 제자 열전〉에 그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제자 가운데 뛰어난 70인을 칠십자(七十子)라고 하는데, 노나라 출신이 가장 많았지만, 절반 이상이 초나라, 진秦나라, 진晋나라, 송나라, 오나라, 채나라, 진陳나라, 위나라 등 외국 출신이었다. 이들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제자는 자로(子路) · 염유(冉有) · 유약(有若) · 안회(顔回) · 중궁(仲弓) · 자공(子貢) · 자하(子夏) · 자유(子遊) · 증자(曾子) 등이다.《논어》〈선진〉편에 따르면, 공자의 제자는 '선진(先進; 먼저 나온 사람. 선배)'과 '후진(後進; 뒤에 나온 사람, 후배)' 그룹으로 나뉜다. 선배 그룹은 공자와 나이 차이가 20여세 정도인 사람들로, 자로와 자공, 유약, 안회 등이다. 후배 그룹은 공자와 40세 정도 차이가 나는 이들로 증자, 자하, 자유, 자장 등이다. 이들 선배 그룹과 후배 그룹을 합쳐 '弟子'라고 하는데, '아우뻘(弟)인 사람, 아들 뻘(子)인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들 뻘인 후배 그룹들이 훗날 공자의 사상을 전 중국에 전했다. 증자를 이은 맹자, 자하와 자유를 이은 순자가 대표적이다. 특히 순자는 전국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직하학궁의 총장 역인 제주 祭酒를 세 번이나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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